
"맞아야지 맞아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80이 넘으신 저희 고모께서 주변에서 대상포진 백신 맞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셨는데, "아직 괜찮다"며 미루시다가 어느 날 몸에 반점이 돋고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그 몇 주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는지, 옆에서 보는 저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대상포진의 정의, 수두바이러스가 숨어 있었다
대상포진은 사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몸에 침입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어릴 때 수두를 앓고 나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수두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가 실제로는 척수 신경절 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순간 신경을 따라 퍼져 나오며 발병합니다. 여기서 신경절이란 척수 주변에 모여 있는 신경세포 집합체를 말합니다. 바이러스가 이 신경절에 수십 년씩 조용히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상포진의 특징적인 증상이 몸의 한쪽에만 집중됩니다. '대상(帶狀)'이라는 한자 자체가 허리띠처럼 띠 모양이라는 뜻입니다.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빨갛게 부어오르며 타는 듯하거나, 고춧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다거나, 뭔가로 계속 찌르는 것 같다는 표현들이 환자들 사이에서 자주 나옵니다. 저희 고모도 말씀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실 정도로 아프다고 하셨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습니다. 옆에서 보면서 '이게 이렇게까지 심한 병이었구나' 하고 새삼 실감했습니다.
발병 위험은 50대부터 급격히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보면 대상포진 환자의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물론 20~30대도 드물게 걸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면역 기능이 자연스럽게 저하되기 때문에 고령일수록 발병률과 중증도가 모두 높아집니다.
대상포진의 치료와 후유증
백신 얘기를 꺼내면 "그냥 맞으면 덜 걸리는 거 아니냐"고 가볍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솔직히 처음엔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접종 가능한 대상포진 백신의 차이를 알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기존 생백신(Live Attenuated Vaccine) 방식의 대상포진 백신은 살아 있는 약독화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예방률이 초기에 약 50% 수준이었고 접종 후 5년이 지나면 예방 효과가 20% 아래로 뚝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생백신이란 병원성을 약하게 만든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이와 달리 현재 주목받는 싱그릭스(Shingrix)는 재조합 서브유닛 백신(Recombinant Subunit Vaccine)입니다. 재조합 서브유닛 백신이란 바이러스 전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면역 반응을 이끄는 특정 단백질 성분만 추출해 만든 백신으로, 면역력이 낮은 고령층도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싱그릭스는 접종 직후 예방률이 97%에 달하며, 시간이 지나도 90% 이상의 예방 효과가 장기간 유지되는 것으로 임상 데이터에서 확인됐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10년, 20년 이상 효과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50세 이후 한 번 접종으로 사실상 평생 보호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맞아야 한다는 점, 회당 비용이 30만 원 안팎이라는 점은 분명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저희 고모처럼 몇 주씩 치료받으러 다니는 고생과 그 고통을 생각하면, 예방 비용이 결코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상포진 자체보다 무서운 합병증이 있습니다. 바로 대상포진후신경통(PHN, Postherpetic Neuralgia)입니다. 여기서 PHN이란 대상포진의 피부 증상과 딱지가 모두 가라앉은 뒤에도 신경 손상으로 인해 통증이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피부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PHN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젊은 분들은 대상포진이 세게 오더라도 앓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고령 환자는 병변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치료 면에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대상포진 치료의 핵심은 항바이러스제(Antiviral Agent)와 진통제, 그리고 가바펜틴(Gabapentin) 계열 신경통 약물 투여입니다. 가바펜틴이란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해 통증 신호를 줄여 주는 약물입니다. 그러나 이 약들로도 통증이 완전히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경근 차단술(Nerve Root Block), 즉 통증이 타고 내려오는 신경의 뿌리 부분에 직접 주사를 놓는 시술이 심한 통증 환자에게 비교적 효과적이라는 임상 경험도 공유되고 있습니다. 치료보다 예방이 훨씬 낫다는 말이 대상포진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드문 것 같습니다.
예방접종 외에 할 수 있는 것들
백신이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면역력을 관리하면 백신 없어도 된다"는 의견도 주변에서 간혹 들립니다. 저는 그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면역력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지금 면역력이 얼마나 되는지 일상에서 측정할 방법도 없습니다. 반면 백신은 효과가 수치로 증명된 수단입니다.
그렇다고 생활 관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백신과 생활 관리는 병행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상포진 예방을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충분한 수면: 면역 기능 회복의 기본 조건입니다.
- 균형 잡힌 식습관: 비타민 C, 아연 등 면역계를 지원하는 영양소를 꾸준히 섭취합니다.
- 규칙적인 운동: 과도하지 않은 유산소 운동이 면역 세포 활성에 도움이 됩니다.
- 스트레스 관리: 만성 스트레스는 코르티솔(Cortisol) 수치를 높여 면역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코르티솔이란 스트레스 반응 시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면 면역력을 억제합니다.
- 만성질환 관리: 당뇨,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다면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대상포진 예방과도 직결됩니다.
이미 대상포진을 한 번 앓고 지나갔다고 해서 면역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재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완치 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그때라도 싱그릭스 접종을 받는 것이 권고됩니다.
저희 고모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막연히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몇 주간의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주사 한 방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그 고통의 시간이 훨씬 더 값비쌉니다. 50세가 지나셨다면, 혹은 주변에 그런 분이 계신다면 지금 바로 가까운 병원에 문의해 보시길 권합니다. 예방은 언제나 치료보다 쉽고, 대상포진만큼 그 말이 절절히 와닿는 질병도 없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대상포진 증상이 의심되거나 백신 접종을 고려 중이시라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